2008년 07월 03일
If you don't know me by now,
여행 둘째 날의 노트를 펴보았더니 이런 문구를 발견했다. 쏟아지는 비를 약하디 약한 우산으로 막으며 외돌개까지 올라갔다가 무섭기도 하고 기운이 빠지기도 해서 일단 산 속 찻집에 앉아 있을 때 떠올렸던 문장이었다.
"If you don't know me by now, you'll never never never know me."
경치를 좀 더 잘 구경하겠답시고 절벽 가까이까지 다가갔다가는 "이상한 아가씨였어. 어째서 그런 날 위험하기 짝이 없는 그 곳에!"라는 한탄이 각종 억측과 더불어 그 곳을 찾는 방문객에게 계속 전해질까봐 두려운 날씨였다. 이 문장이 불쑥 튀어나온 것은 궂은 날에 지리도 잘 모르는 낯선 손님을 굳이 거기까지 데려다 준 택시 아저씨에 대한 원망이 무의식적으로 발현된 걸까? 지금까지 택시를 하면서도 이런 날에 혼자 다니는 손님의 마음을 모른다면, 아저씨는 영원히 손님과는 마음 안 맞을 거야, 라는 저주?
아니, 어쩌면 이런 장마철에 여기 이 땅의 끝까지 와서, 숲 속 매점에서 인스턴트 냉매실차를 마시면서 그곳에 비치된 "프로즌 호텔"이나 읽으며 비를 긋는 상황으로 나를 내 몬 모든 사람들과 사물들에게 하고 싶었던 말일 것이다. 원하는 것을 솔직히 말하지도 못하고, 실천하지도 못하는 나는 나이브하거나 자기본위적인 마음에 시간이 지나고 오래 겪으면 알게 된다고 믿었다. 그렇게 여러 일들을 함께 보냈으니 지금쯤이면 나를 알겠지 싶었다. 그러나 시간이 서로를 알게 해주는 것도 아니고, 여러 일을 겪었다고 해서 다들 서로를 알아주는 것도 아니라는 걸 새삼 깨닫는 일은 언제나 씁쓸하다. 말한다고 아는 것도 아니고, 오로지 알고 싶은 사람에게만 보이는 게 다른 이의 속마음이다. 지금까지도 모른다면 아마 영원히 모를 것이다. 우리는 알 수 없도록 되어 있는 다른 사람들이기 때문에, 혹은 알고자 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에. 아니면 단순히 내가 어리석기 때문에.
2003년 경, 내가 이 문장을 언급하는 어떤 글을 쓴 적이 있었는데, 한 분이 라디오 DJ에게 사연 보내듯 본인의 소중한 기억을 밑에 적어주셨다. 졸업 직후 마음이 확 가는 남자를 만났는데 그 남자가 확정적 약속 없이 유학을 간다고 하자, 이 노래를 담은 가사집을 주면서 이 문구에 형광펜으로 밑줄을 좍좍 그었다고 한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냐고? 내가 이제까지 본 중에서도 참 귀엽고도 효과적인 프로포즈였던 걸로 기억하고 있다.
그러니까 이 말 자체는 사실 "너는 모르고야 말 것이다!"라는 무시무시한 예언이나 "어찌, 아직도 몰라!"하는 원망만이 아니라, 어떤 경우에서는 위의 귀여운 분처럼 "알아주세요"라는 부탁이나 애원인 셈이다. Simply Red도 말하지 않던가. 내가 너를 믿듯이, 너도 나를 믿어 줘. 눈을 맞댈 수 있는 관계가 아니라면 다 무슨 소용이야. 지금 모른다면, 앞으로도 모르게 될 터니까, 지금 여기에서 알아보자고 하는 제안이다.
그 날 그 곳, 내가 이 문장을 쓸 때의 심사는 이제껏 나를 몰라 준(!) 이들에 대한 30%의 아쉬움, 20%의 투정, 5% 정도의 기대와 45% 정도의 체념이 아니었을지. 유리 대신 아크릴판, 혹은 플렉시글라스를 덧댄 목조 산장 풍의 휴게소 안, 바다와 산의 안개가 장마비와 뒤섞인 그 곳에서 나는 송창식의 "우리는"을 들으며 이 문장을 썼다. "기나긴 하세월을 기다리어" 만났다고 해도 "마주치는 눈빛 하나로도 모두 알 수" 있을 리가 있나. 그렇게 많은 일들을 함께 겪었어도 당신은 나를 아직도 모르는데. 내가 지금 이 곳에 와 있는 이유를 모른다면, 앞으로도 절대로 절대로 절대로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그렇게 영원히 모르는 편이 좋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렇게 말해놓고도 그 말에 형광펜으로 밑줄 좍좍 긋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또 왜인지, 실은 나도 지금까지 잘 모르겠다.
# by | 2008/07/03 13:52 | 일상의 노랫말 | 트랙백 | 덧글(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