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

"Just GoGo" 28권을 보다 보니 (요새 내 영감의 원천은 오로지 청춘 스포츠 만화 같은 느낌이……) 주니어 테니스 1인자인 사세코에게 그의 연적이자 라이벌인 이데는 책의 주인공다운 순진무구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한다. "테니스를 하지 않으면, 더 이상 네가 아냐? 사람들이 너를 사랑하지 않아?"

피붙이가 아닌 타인을 사랑하게 되는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끔 그 모든 이유들은 어떤 면에서도 합당하지 않으며 그 요소들 사이에도 편차가 있다. 연초에 외모지상주의에 대한 아주 흥미로운 책을 하나 읽었는데, 그 책의 모두(冒頭)에 한 리얼리티쇼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가명으로 나오긴 하지만 내 기억에 의하면 이 쇼는 Bachelorette 을 지칭하는 듯한데, 여기서 나타난 얘기는 이런 식이다. 치어리더 출신의 금발 미인은 이상적인 신랑감을 구하는 쇼에 나가는데 처음 나온 후보자들은 훌륭한 직업의 건실한 청년들이었지만 외모는 다 평균 수준. 주인공 아가씨가 월스트리트의 성공적인 증권분석가로 거의 범위를 좁혀가려는 순간, 쇼는 세 명의 핫한 청년들을 다시 투입한다. 결국 주인공은 처음 골랐던 증권분석가를 버리고 잘생긴 소방수 청년을 골라낸다. (처음에 읽었을 때는 무슨 내용인지 몰랐는데 내 기억이 반짝. 역시 나 또한 잘생긴 소방수는 잊지 않는다.) 일종의 Love or Money 같은 내용이긴 한데, 책의 저자는 시청자들 또한 여자의 선택에 반대하지 않았다는데 초점을 둔다. 결국 외모에 기반한 사랑을 우리는 일반적으로 더 진실하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경제적 능력이나 외모, 둘 다 중요하지만 사람들은 차라리 외모에 끌렸다고 하는 편이 돈에 끌렸다고 하는 것보다 더 옳다고 생각한다. 아마도 돈은 좀 더 쉽게 매력을 잃거나 외모가 보다 안쪽에 가까이 있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르겠다.

타인을 사랑할 때 우리는 언제나 그 사람의 모습, 그 사람의 성격, 그 사람이 하는 일을 간과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 것들을 하나둘 씩 잃어간다고 할 때 뭐가 가장 중요할까? 혹은 나 자신조차 나를 계속 통일적인 인격체로 인식할 수 있으려면 무엇을 지켜야 할까? 즉, 무엇이 가장 사람 내면의 안쪽에 있을까? 온전한 사지? 일관성 있는 성격? 확고한 인생관, 변함 없는 라이프 스타일? 이런 것들을 개인의 요소로서 파악한다고 하면 외모나 경제적 능력보다는 훨씬 더 보편적으로 용납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또한 여전히 한 인간의 온전한 본질은 아니다. 언젠가 누군가 내게 개인적 경험에 비추어 큰 사고를 당한 이후의 사람은 그 이전의 사람과는 단순히 신체적 의미에서뿐 만 아니라 모든 면에서 다른 사람이라고 말해준 적이 있다. 그 사람에 대한 우리의 감정도 같을 수가 없다.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서 테니스를 하지 않는 사세코를 이전처럼 받아들일 수 있을까? 아마도 이 아이는 아직 어리고 테니스는 하거나 하지 않거나 일종의 직업 선택의 문제에 가깝기 때문에 우리는 쉽게 긍정적인 대답을 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런 질문이 우리에게도 유효할까?

이전에 내게도 이와 똑같은 질문을 한 사람이 있었다. "그게 없으면 네가 아니야? 그것이 없다면 이제껏 해온 다른 것들은 아무 것도 아니야?" 그 질문의 바탕은 부정에 있겠지만, 실제로 아마 그 사람조차도 그게 없는 나를 실제로 상상하고 그런 대답을 한 건 아닐 것이다. 우리의 한 요소는 다른 요소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으므로 그 사람이 항상 본 나는 그것이 있었던 나였다. 연예인에게서 도덕성을 요구하는 것도 이와 같은 사고체계에 근거한다. 그가 과거에 성형을 했다거나 학교 시절에 불량했다거나 하는 일들이 그에 대한 인식에 영향을 끼친다. 아마도 지금 현재의 내가 아니라면 나를 사랑하지 않게 될 사람은 많을, 아니 가족을 뺀 전부 다일 것이다. 어떤 요소가 달라졌음에도 변하지 않는 마음을 가지고 우리는 진정한 애정을 측정하지만, 진정한 애정은 변함이 없다기보다 달라진 요소에 적응할 수 있는 새로운 마음을 의미한다.

나는 무슨 일이 생겨도 나 자신을 나로 인식할 수 있다. 나를 인식한다는 것 자체만으로 존재의 일관성을 지니기 때문에. 하지만 남을? 남은? 우리는 언제나 타인에 대해서 변하지 않는 마음을 가질 수 없다. 달리 말하면 어떤 요소가 달라졌어도 나는 나 자신임을 주장할 수 있고 변한 건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의 마음이라는 뜻이다. 언젠가도 썼듯이 나는 판단하지 않고 받아들여주는 관계를 꿈꾸지만, 그런 사람이 없다고 해서 내 자신에 대해서 괴리감을 느끼지는 않아야 한단다. 테니스를 하지 않으면 남이 사랑해주지 않을지 모르지만, 다른 사람이 되는 건 아니듯이. 내가 글을 쓰거나 말을 하지 않으면 사람들이 내가 존재하는지도 모르게 될 테지만, 존재하지 않게 되는 것이 아니듯이. 타인에 대한 우리의 순정은 그렇게도 연약하고 변덕스러우며 현재적이지만 그렇다고 현재에 있어서는 완전히 거짓도 아니라는 것만으로 의미가 있으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시 이유 없이 관성적으로 계속 자기를 사랑해줄 사람은 자기뿐이다. 그러니 꼬마 모모의 말을 빌리자면 우리는 사랑해야 한다. 현재의 타인을, 영원한 자기자신을. 
 

by MissPolly | 2008/04/28 14:16 | 트랙백 | 덧글(2)

트랙백 주소 : http://llareggub.egloos.com/tb/1747945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Commented at 2008/04/29 01:27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ethar at 2008/05/01 16:07
테니스를 하기 때문에, 하지 않았기 때문은 아닐지도 모르겠네요.
결정 혹은 조건에 대해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나 자신이겠지요.
상자 속의 동전이 앞면인지 뒤편인지 열어보는 순간의 선택같은 것일까.
그런 인식에 있어서 당사자와 다른이들에게 느껴지는 무게는 분명 다를거예요.

:         :

:

비공개 덧글

◀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