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머 도둑

나는 2년 전만 해도 꽤 웃겼던 것 같다.

이 말은 굉장히 자아도취적이기도 하고, 판단할 수 없는 참, 거짓을 담고 있기도 하지만  아무튼 그 당시에 내가 유머에 매진했던 것만은 분명하다. 뭐, 남들이 웃었는지 웃지 않았는지까지는 모르겠다. 이전에 내가 스스로 "난 참 웃기잖아"라고 말을 했을 때, 피식피식 비웃던 사람들이 있기는 했으니까. 그리고 과거에 썼던 글들을 읽어보니까 "웃었다'라는 반응도 많은 거 보니, 분명 누군가 한둘은 웃길 수 있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아무튼"이든, "어쨌든"이든 이런 불분명한 태도를 위한 연결부사들을 싫어하긴 하지만 아무려나 나는 지금보다 명랑했었다. 지금은 글로써는 전혀 웃기지 못하고, 가끔 몇몇 젊은이들 대상으로 유머를 시연할 뿐이다. 그렇지만 대면으로 우스개를 하는 경우에는 "웃어주세요, 제발!"이라고 부탁하는 티가 나서 가끔 내 스스로가 불쌍해지기도 한다. 타인을 웃겨야 할 필요가 있을 때 - 졸지 말라고, 나를 좋게 봐 달라고, 그냥 내가 지루하니까 -, 웃겨야 하는 건 왠지 절실해서 싫다.

이전에는 그런 필요가 없었는데도, 남을 웃겨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지금은 이렇게 시간을 때워야 하는 경우를 빼고는 그럴 의욕이 없다. 하기는 지금 내 스스로 웃을 만한 상황이 아닌지도 모른다.  나이도 적지 않은데, 전망 없는 독신. 일만 많이 하지 돈은 안 들어오니까 유사 니트족에 가까운 인생, 게다가 허리는 뻣뻣해지고 주름은......그만 하자, 이런 푸념은 약간만 늘어놓으면 블랙코미디의 어감을 살포시 띠기도 하지만 계속하면 구질구질해진다.

그렇다고 이렇게까지 사람이 웃겨지지 않을 것까지는 없지 않냔 말이다. 물론 나도 이 비극을 희극으로 승화시킬 만한 재료는 몇 가지 가지고 있다. 개인의 비극은 사회적 희극이기도 하니까. 아마 내가 겪은 몇 가지 슬픔을 말하면, 몇몇은 다들 깔깔거리며 "아하하, 그게 뭐!"라고 말할지 모른다. 예를 들자면 내가 이전에 이태원 길거리에서 오뎅을  무심코 항아리에 담긴 간장에 찍어먹은 후, '아, 여기엔 전 세계의 세균이 다 담겨 있을지 모른다"라고 퍼뜩 깨달은 후, 공포와 불안에 시달렸던 일 같은 것. (피검사를 받으러 갈까 했으나, 피가 무서워서 포기했다.) 그 이후, 고도의 위생관념을 계발하면서 심기증과 싸워야 했지만, 내 비극에 적극적으로 동감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니까 결국 그동안 나는 슬퍼하면서 남을 웃겼을 뿐이지, 순수한 유머로는 승부를 보지 못했다는 뜻이다.

갑자기 그 생각을 하니 꽤 우울해졌다. 내 유머는 다 어디로 갔을까? 누가 내 유머를 훔쳐 갔을까? 어떻게 도로 찾을 수 있을까?

뮤지컬이라거나 영화라면 노래극이나 사이코 드라마 같은 걸로 명랑함을 되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노래를 못한다. 연기는 발로 하는 게 더 나을지도.

여행서라면, "...그리하여 나는 티벳으로 떠나게 되었다...'라는 결론이 나올지 모른다. 거기서 어떤 도인을 만나고 인생의 깨달음을 얻은 후, 아, 그래 유머는 다 부질없구나. 웃음은 내면에서 우러나와 살며시 한 번 미소지으면 그만...이라는 경지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나는 티벳은 커녕, 아까시 꽃이 활짝 핀 뒷산도 올라가기 싫다.

이게 만약 로맨틱 코미디라면 나는 나를 찼던 남자(들)을 찾아가 이유를 따질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어쩌면 "너의 유머는 너무 독살스러워서 싫었어"라거나 "나는 사실 한 번도 진심으로 웃은 적 없었어"라고 말하겠지. 그러다가 아마 그 와중에 곁에 있지만 깨닫지 못했던 사람, 내 유머의 진가를 알고 있는 사람의 존재를 깨닫고 그와 해피엔딩. 하지만, 내 유머의 진가를 깨닫는 사람은 커녕, 비웃지나 않으면 다행이다.

사회파가 된다면, 나는 아마 나를 이렇게 만든 사회를 대상으로 고소를 할 것이다. 그럼 이기지는 못 해도 사회적으로 일파만파 센세이션을 일으키면서 사람들이 유머에 대해서 다시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면서 웃음의 의미를 되새기겠지. 하지만 나는 고소는 커녕 경찰서에 간다는 생각만으로도 손발이 오그라든다. 반은 귀찮아서, 반은 무서워서.

SF라면, 나는 아마 시간여행기라든가, 우주선 같은 걸 타고 순환적 타임라인의 빈틈으로 들어가 내 유머가 사라진 계기를 찾게 되리라. 그러면서 그 사건을 돌려놓으려고 애쓰고, 그게 엉망이 되어 뒤죽박죽 시간이 얽히면서 그런 식으로 인간사를 수정할 수는 없다는 걸 깨닫게 되리라. 하지만 시간여행기를 만들 수 있다면 나는 유머가 왜 사라졌는지 따위는 애초에 고민 안 했을 게 아닌가? 나는 이제 SF의 환상성과 현실불적용성에 대해서 분노하기에 이른다!

그래, 추리소설. 추리소설이라면 실제로 내가 유머를 잃도록 음모를 꾸민 사람이 있는 것이다! 물론 이게 국제 첩보 스릴러가 된다면 전 세계가 나를 상대로 우울증이라거나 심기증을 발전시키도록 계획을 짠 것이다. 나 같은 소시민을 왜?라고 생각하겠지만, 원래 스릴러의 내용이 그러하지 않은가? 항상 소시민을 대상으로 뭔가 국제적인 음모가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전 세계는 현재 광우병과 AI에 싸우느라고 나 같은 소시민의 유머 따위엔 관심을 기울일 틈이 없어보인다. 고전적 추리소설이라면 나를 우울하게 만들려는 남편이나 집사가 범인이다. 아쉽게도 내게는 둘 다 없으니, 그건 아니라고 확실히 말할 수 있다. 하드보일드라면 유산에 눈이 먼 뇌쇄미인이 범인이겠지만, 그런 사람 모른다.

동화 풍 일본 애니메이션이라면, 친구들의 웃음 하나하나가 모여 하하하 웃을 때, 유머가 돌아오게 된다. 다들 그런 웃음을 보내며 "힘내! 폴리짱! 우리가 옆에 있잖아!"라고 외치겠지? 그 외침소리가 하나가 되어 저 멀리 함박웃음별에 닿을 때 잃어버린 에너지가 다시 지구로 돌아오면서 내 주위에서 오라가 피어오르게 된다. 미안하다, 유치하다.

스포츠물은...훈련을 한다는 생각만으로도 우울하다. 넘겨 뛰고.

아무래도 결론은 치유계 휴먼드라마로 무난하게 막을 내려야 할 듯 싶다. 유머를 잃은 한 사람이 사회에서 외면받은 사람들만 모여 사는 마을로 흘러든다. 그러다 거기 식당에서 일하게 되는데, 주변 사람들의 따뜻한 격려와 애정 속에서 과거의 상처를 치유받고 유머인으로서 거듭나게 된다는 내용이다. 그런 마을이 어딘지는 모르겠지만.

소설과 현실의 갭이 이처럼 크듯이, 아마 나는 다시 명랑해지기는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현실은 소설과 같지 않다는 걸 새삼 깨닫는다. 한 번 없어진 유머는 돌아오지 않는다. 도둑은 내 명랑함을 훔쳐서 어딘가 멀리로 가버렸다. 나는 아마 더 앞으로도 괴로울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희망적인 건 내게 유머가 없음을 새삼 깨달았다는 것. 이제는 좀 더 (다시는 아니라도) 명랑해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는 것. 이따가 놀이터 모래밭에라도 나가볼까, 두껍아, 두껍아. 헌 유머를 줄 테니, 새 유머를 다오. 

by MissPolly | 2008/05/13 15:47 | 일상의 노랫말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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